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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AI

AI 시대, 대학이 가르쳐야 할 핵심 역량 4가지

AI가 ‘만드는 비용’을 0으로 끌어내린 시대, 대학은 무엇을 배웠는지 증명하는 곳에서 무엇을 해봤는지 증명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의력·실행력·검증력·책임력, 그리고 시장을 평가자로 두는 학습 — MBL.

관점 · 글 고승원

대학은 무엇을 배웠는지 증명하는 곳에서, 무엇을 해봤는지 증명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존 교육의 구조는 명확하다. 수업 → 과제 → 시험 → 학점 → 졸업. 이 순서는 ‘무엇을 아는가’를 증명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AI가 ‘만드는 일’의 비용을 빠르게 0으로 끌어내리는 지금,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야 한다. 문제 발견 → 실행 → 시장 전달 → 반응 확인 → 실패·수정 기록. 시장과 현장을 학습의 평가자로 두는 이 방식이 시장기반학습, 곧 MBL(Market-Based Learning)이다.

숫자로 보는 현실

56%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 기술’을 학위 과정에서 못 얻었다는 졸업생 (준비 부족층 기준)

Cengage 2025 Graduate Employability Report

30%

2025년 졸업생 중 전공 관련 정규직 취업 (2024년 41%)

Cengage, 2025

50%+

AI가 초급 직무의 ‘일 자체’를 대체하는 상호작용 비율

Anthropic Economic Index, 2025

−80%

AI 도입 기업의 분기별 초급 채용 감소 (2023년 이후)

Harvard 연구, 2026

채용은 학위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학위가 남긴 것은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의 공백’이다. 초급 일자리는 AI가 대체하고, 남은 자리는 판단·검증·책임 같은 상위 역량을 요구한다. 수치는 조사·기관·연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01 · Why Now

만드는 비용이 0이 되면, 남는 건 판단이다

AI 도입 기업의 초급 채용은 2023년 이후 분기마다 급감했고, 연구자들은 이를 ‘연공서열 편향적 기술 변화’라 부른다. 초급 직무는 교과서와 훈련 데이터로 배우는 정형화된 일이라 AI가 가장 먼저 흡수한다. 반대로 상급자 고용은 같은 기업에서 계속 늘어난다.

그 결과 기업들은 초급 공고에 판단·이해관계자 관리 같은 상급 역량을 얹기 시작했다. 이른바 ‘시니어화(seniorization)’다. 즉, 갓 졸업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을 만들 줄 아는가’에서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가’로 옮겨간 것이다.

AI 시대에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이 흔해진 세상에서 무엇을 물을지 정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능력이다.

02 · The Four Competencies

Define · Execute · Verify · Own

MBL은 학습의 전 과정을 네 가지 능력으로 묶는다. 각 역량의 목표는 ‘선언’이 아니라 졸업할 때 손에 남는 ‘증거’다.

01

Define정의력

현장의 불편과 통증을 실제 문제로 번역하는 능력

졸업할 때 남아야 할 증거

고객·현장 인터뷰, 문제정의서, 가설 카드

02

Execute실행력

AI와 자신의 전공 지식으로 최소한의 해결책을 만드는 능력

졸업할 때 남아야 할 증거

MVP·콘텐츠·분석보고서·설계안 등 실제 산출물 + AI 활용 기록

03

Verify검증력

교수의 평가가 아니라 시장·현장의 반응으로 가설을 확인하는 능력

졸업할 때 남아야 할 증거

사용자 피드백, 판매·사용·딜리버리 로그, 검증 보고서

04

Own책임력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설명하고 다음 행동을 설계하는 능력

졸업할 때 남아야 할 증거

실패 자산 기록, 회고, 개선 결정 기록

특히 Own(책임력)이 결정적이다. AI 시대에는 Execute의 비용이 계속 낮아진다.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고, 실패를 다음 판단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01

Define정의력

답을 잘 찾는 사람이 아니라, 풀 가치가 있는 문제를 발견하는 사람.

AI는 답을 만드는 데 굉장히 뛰어나다. 하지만 어떤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현장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무엇이 불편하세요?”라고 묻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인재를 가르는 첫 번째 능력은 이것이다 — 현장의 통증을 ‘풀 가치가 있는 문제’로 번역하는 능력. 정의력의 증거는 고객·현장 인터뷰와 그 기록, 문제정의서, 가설 카드로 남는다.

02

Execute실행력

과제 제출로 끝나지 않는다 — 실제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결과물.

문제를 발견했다면 실제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봐야 한다. 여기서 AI가 강력한 도구가 된다. 컴퓨터공학과 학생이라면 작은 프로그램을, 디자인 전공 학생이라면 실제 매장의 디자인 개선을, 관광 전공이라면 지역의 새로운 관광상품을, 경영 전공이라면 기업의 실제 데이터를 분석한 제안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제 제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 — 이것이 실행력이다. 그 증거는 학생이 실제로 만든 산출물과 AI 활용 기록으로 남는다.

03

Verify검증력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학습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학습.

우리가 만든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 누가 판단해야 하는가? 지금까지는 대부분 교수가 판단했다. 과제를 내면 점수를 주고, 시험을 보면 정답과 오답이 갈린다. 하지만 현실에는 정답지가 없다. 고객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대신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구매하거나 구매하지 않고, 다시 찾아오거나 떠난다.

그래서 시장의 반응을 학습에 포함시킨다. 만든 것을 실제 현장에 전달해보고 확인한다 — 사람들이 사용하는가, 돈을 지불하는가, 다시 찾는가, 아니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학습이 일어난다.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학습이 아니라,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학습이다.

04

Own책임력

실패 이후가 더 중요하다 — 왜 실패했는지 설명하고, 다시 한다면 무엇을 바꿀지 아는 능력.

학생에게 프로젝트를 시켰는데 실패했다고 하자. 대부분의 교육에서 실패한 프로젝트는 낮은 점수를 받고 끝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패 이후가 더 중요하다. 왜 실패했는가 — 문제 정의가 틀렸는가, 고객을 잘못 골랐는가, 해결 방법이 틀렸는가, 가격이 문제였는가, 전달 방법의 문제였는가. 그리고 다시 한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 이것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결과를 소유하는 능력, Own이다. AI 시대에는 실행 비용이 계속 떨어져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더 쉬워진다. 그렇다면 오히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실패를 다음 판단으로 전환하는 능력이다. 그 증거는 실패를 분석하고 다시 설계한 기록으로 남는다.

한 학생의 4단계

디자인학과 학생이 지역의 작은 식당을 찾아간다. 메뉴판이 복잡해 고객이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걸 발견하고, 고객과 사장을 인터뷰한다 — Define. AI와 디자인 도구로 새 메뉴판을 만든다 — Execute. 실제 매장에 적용해 주문 시간과 반응을 확인한다 — Verify. 생각보다 효과가 없었다면 왜인지 분석하고 다시 디자인한다 — Own.

이 학생에게 남는 것은 단순한 디자인 과제가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을 만나고, 해결책을 만들고, 현장에 적용하고, 실패하거나 성공하고, 다시 개선한 기록이 남는다.

03 · 선언이 아니라 증거

“당신이 도전적인 인재라는 증거는?”

대학들은 인재상을 선언해왔다. 창의적인 인재, 글로벌 인재, 융합형 인재, 도전하는 인재. 그런데 졸업식 날 학생에게 ‘그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학점과 자격증 외에는 내놓을 것이 없다.

MBL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인재상을 선언하지 않고 증거를 남긴다. 졸업할 때 학생의 손에는 성적표 하나가 아니라 이런 기록이 있어야 한다 — ‘나는 어떤 문제를 발견했고, 누구에게 물었고, 무엇을 만들었고, 실제로 누구에게 전달했으며, 어떤 반응을 받았고, 무엇에 실패했고, 그래서 다음에는 무엇을 바꾸었는가.’

졸업장은 배웠다는 증명이고, MBL 포트폴리오는 해봤다는 증명이다.

그래서 기업이 원하는 것은 실패해보지 않은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작은 시장에서 이미 몇 번 맞아본 사람일 수 있다. ‘이미 현장에서 맞아 본 기록’ — 그것이 새로운 졸업장이다.

04 · What MBL Is (and Isn’t)

MBL은 창업 교육이 아니다

MBL(Market-Based Learning)은 실제 시장과 현장을 학습의 평가자로 두고, 문제 정의부터 실행·검증·실패·개선까지의 과정을 학습하는 교육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창업 교육과 분리하는 것이다. MBL은 학생 모두를 창업가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디자인 전공자는 실제 가게의 메뉴판을 개선하고,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소상공인의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관광 전공자는 지역 관광상품을 설계해 실제 고객에게 판매해보고, 경영 전공자는 기업의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개선안을 제안한다. 핵심은 판매 여부가 아니라 시장에 전달하는 것이다.

Market = 내가 만든 결과물을 실제로 사용하는 외부 세계. 기업·지역사회·고객·시민·기관 모두 시장이 될 수 있다.

이 교육 모델의 구조와 평가 방식은 별도 아티클 ‘AI 시대의 교육, 대학은 파는 경험을 가르쳐야 한다’에서 더 깊게 다룬다.

더 알아보기 · MBL

MBL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시장을 평가자로 두는 교육 모델 MBL의 구조·평가 방식·현장 적용을 별도 아티클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MBL 아티클 읽기
새로운 졸업장

“지난 4년 동안 당신이 해결해본
진짜 문제 하나를 보여주세요.”

기업이 GPA가 아니라 이렇게 묻고, 학생이 링크 하나를 건넨다. 그 안에는 Define·Execute·Verify·Own의 기록이 모두 들어 있다. AI 시대에도 대학은 여전히 시험으로만 학생을 평가해야 하는가 — 그게 MBL이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졸업장이다.

참고 자료: Cengage Group 2025 Graduate Employability Report, Anthropic Economic Index(2025), 하버드대 초급 채용 연구(2026), NACE 직무역량 자료. 통계는 조사·기관·연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