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의 AI
이미 오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기술. 1.5°C 아래로 막아내도 폭염과 홍수와 가뭄은 온다. 파리협정의 잊힌 절반, ‘적응’에서 AI가 실제로 하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을 살펴본다.
기후 적응과 기술 · 글 고승원
막아도, 온다.
기후 이야기는 대개 ‘얼마나 줄일 것인가’로 흐른다. 배출량, 탄소중립, 1.5°C. 그런데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약 1.55°C 높았다(WMO, 2025). 한 해의 수치가 곧 파리협정 목표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목표는 수십 년 평균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미 바뀐 기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파리협정은 처음부터 두 개의 다리로 서 있었다. 하나는 감축(mitigation), 다른 하나는 적응(adaptation)이다. 감축이 미래의 피해를 줄이는 일이라면, 적응은 이미 피할 수 없게 된 피해 속에서 사람과 생계를 지키는 일이다. 온도를 0.1°C 낮추는 싸움과, 오늘 밤 38°C 체감온도 속에서 혼자 사는 노인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둘 다 기후 정책이다.
이 시리즈의 앞선 글들이 1.5°C를 재는 법과 감축 약속을 추적하는 AI를 다뤘다면, 이 글은 다른 쪽 다리를 본다. 네팔 홍수 예측이라는 하나의 재난을 깊게 다룬 이전 글과 달리, 여기서는 폭염·도시·농업·금융에 걸친 ‘일상의 적응’ 전반을 훑는다.
숫자로 보는 현실
1.55°C
2024년 지구 평균기온, 산업화 이전(1850~1900) 대비 — 관측 사상 처음 1.5°C를 넘긴 한 해
WMO, 2025
54.6만
해마다 폭염으로 숨지는 사람 — 1990년대보다 23% 늘었다
Lancet Countdown, 2025
12~14배
개도국 적응 재원 수요(2035년) 대비 현재 국제 공공 적응 재원의 격차
UNEP Adaptation Gap Report, 2025
113 → 136
다중재해 조기경보 체계를 갖췄다고 보고한 나라 수(2022년 → 2026년). 약 60개국은 아직이다
WMO·UNDRR 집계, Climate Home News 2026
수치는 WMO·Lancet Countdown·UNEP·UNDRR 등 공개 자료 기준이며, 조사·연도·집계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조기경보 체계 보유국 수는 각국의 자기 보고에 기반한다.
01 · The other half of Paris
협정은 적응도 약속했다
파리협정 7조는 ‘적응에 관한 전지구적 목표(Global Goal on Adaptation, GGA)’를 세웠다. 적응 역량을 키우고, 회복력을 강화하고, 취약성을 줄인다는 목표다. 문제는 감축과 달리 적응에는 ‘톤’ 같은 공통 단위가 없다는 점이었다. 배출량은 더하고 뺄 수 있지만, ‘회복력’은 어떻게 합산하는가.
그래서 8년이 걸렸다. 2023년 두바이 COP28에서 ‘UAE 기후회복력 프레임워크’가 채택되며 GGA는 처음으로 구체적인 2030년 목표를 얻었고, 2025년 벨렝 COP30에서는 그 진척을 재는 지표 59개가 채택됐다. 목표가 숫자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2015
파리협정 채택 — 7조 ‘적응’
7조가 ‘적응에 관한 전지구적 목표(GGA)’를 세웠다. 적응 역량 강화, 회복력 강화, 취약성 감소. 8조는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를 따로 다룬다.
2022
UN ‘모두를 위한 조기경보’ 출범
UN 사무총장이 3월에 발표했다. 2027년 말까지 지구상 모든 사람을 조기경보 체계로 보호하겠다는 목표다.
2023
UAE 기후회복력 프레임워크
COP28 결정(2/CMA.5)이다. 물·식량·보건·생태계·빈곤과 생계·인프라·문화유산의 7개 주제 목표와, 위험평가·계획·이행·모니터링의 4개 단계 목표(2030년)를 담았다.
2025
COP30 벨렝 — 지표 59개, 적응 재원 ‘3배’
GGA 진척을 재는 자발적 지표 59개를 채택했다. 적응 재원은 2035년까지 ‘최소 3배’로 늘리기로 했지만 기준연도와 금액은 문서에 명시되지 않았다.
2027
조기경보 목표 시한
2026년 9월 기준, 시한까지 15개월 남은 시점에 약 60개국이 여전히 다중재해 조기경보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감축은 미래를 바꾸는 일이고, 적응은 이미 도착한 미래를 견디는 일이다.
02 · Four layers of adaptation
적응의 지도 — 네 개의 층
적응은 거대한 사업 하나가 아니라 겹겹의 층이다. 한 사람의 몸, 한 동네의 거리, 한 농가의 밭, 그리고 그 모든 위험의 값을 매기는 금융. 층을 눌러 각 층위에서 AI가 하는 일, 실제 사례, 그리고 주의할 점을 확인해 보자.
층은 서로 연결돼 있다. 개인의 폭염 위험은 도시의 열섬에서, 농가의 소득은 금융의 보험에서 이어진다.
층위 1 · 개인·건강
폭염은 소리 없는 재난이다. 무너지는 건물도 불어나는 강물도 없이, 혼자 사는 노인과 야외 노동자, 영유아를 먼저 데려간다.
AI가 하는 일
기온이 아니라 ‘영향’을 예보한다 — 체감온도·습도·야간 최저기온을 대상 집단별 위험으로 번역
취약계층 식별 — 고령·독거·냉방 여부·소득 같은 사회 데이터와 열 노출을 겹쳐 방문·연락 우선순위를 정한다
경보의 개인화 — 같은 경보라도 야외 노동자, 축산 농가, 보호자에게 서로 다른 행동 지침으로 전달
실제 사례
한국 기상청은 2019년 6월부터 ‘폭염 영향예보’를 정규 서비스로 운영한다. 보건(일반인·취약인), 산업, 축산업, 농업, 수산양식 분야별로 관심·주의·경고·위험 네 단계를 낸다. 2026년 여름에는 18년 만에 폭염특보를 개편해 일최고체감온도 38°C 또는 일최고기온 39°C 이상이 하루만 예상돼도 발표하는 ‘폭염중대경보’를 신설했다(기상청, 2026).
주의할 점
취약계층 데이터는 곧 민감한 개인정보다. 누가 혼자 사는지, 에어컨이 있는지 아는 시스템은 보호에도, 감시에도 쓰일 수 있다.
네 층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AI가 바꾸는 것은 해상도와 시점이라는 점이다. ‘올여름은 덥다’가 ‘이 동네, 이 시간대, 이 사람이 위험하다’로, ‘올해 몬순은 평년 수준’이 ‘이 지역은 3주 뒤에 파종하라’로 바뀐다. 적응은 결국 누가, 언제, 무엇을 할지의 문제이고, AI는 그 질문을 더 잘게 쪼개 더 일찍 답하게 해준다.
반대로 AI가 바꾸지 못하는 것도 분명하다. 쿨루프를 설치할 예산, 파종을 미뤄도 버틸 수 있는 저축, 경보를 듣고 갈 수 있는 대피소. 이것들은 모델이 아니라 재원과 제도가 만든다. 그래서 적응의 AI 이야기는 반드시 돈 이야기로 이어진다.
03 · Early Warnings for All
경보는 네 개의 기둥 위에 선다
조기경보는 가장 비용 대비 효과가 큰 적응 수단으로 꼽힌다. UN에 따르면 폭풍이나 폭염을 24시간 전에만 알려도 피해를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고, 조기경보 체계가 잘 갖춰진 나라의 재난 사망률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최소 6배 낮다. 그래서 UN은 2022년 ‘모두를 위한 조기경보(Early Warnings for All)’를 시작하며 2027년 말까지 모든 사람을 경보 체계 안에 두겠다고 했다.
진전은 있었다. 다중재해 조기경보 체계를 갖췄다고 보고한 나라는 2022년 113개국에서 2026년 136개국으로 늘었다. 그러나 시한을 15개월 앞둔 2026년 9월에도 약 60개국이 빠져 있다(Climate Home News, 2026). 2025년 WMO·UNDRR 보고서에서도 군소도서개발국 중 체계를 갖춘 곳은 43%에 그쳤다.
이 이니셔티브는 경보를 네 개의 기둥으로 나눈다. 각 기둥에서 AI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필자의 판단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점수는 공식 평가가 아니라 이 글의 관점이다.
재해 위험 지식
누가, 어디서, 무엇에 노출돼 있는가. 위성 영상으로 건물·인구 분포를 추정하는 AI가 기존 통계의 빈칸을 채울 수 있다.
관측·예측
AI가 가장 크게 기여하는 곳이다. 관측소 없는 하천의 홍수 예보, 몬순 시작 예측, 산불 탐지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경보 전달·소통
휴대전화 경보, 지역 언어 번역, 대상별 메시지. AI가 도울 수 있지만, 휴대전화도 전기도 없는 마을에는 사이렌과 사람이 필요하다.
대비·대응 역량
대피소, 훈련, 이동 수단, 이웃. 경보를 받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모델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만든다.
두 번째 기둥, 관측과 예측에서는 AI가 이미 판을 바꾸고 있다. Google의 AI 홍수 예보는 하천 홍수를 최대 7일 앞서, 도시 돌발홍수를 최대 24시간 앞서 내다보며, 현재 150여 개국 약 20억 명이 사는 지역을 포괄한다고 밝히고 있다(Google Research, 2026년 확인). 관측소가 없는 하천에도 ‘가상 관측소’를 세우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머지 기둥이 약하면 이 예보는 화면 안에서 끝난다. 경보의 가치는 가장 약한 기둥이 결정한다. 예측이 7일 앞서도 전달이 끊기면 0일이고, 전달이 돼도 갈 곳이 없으면 0일이다. 재난 AI를 둘러싼 윤리적 질문은 별도의 글에서 다룬 바 있다.
04 · The adaptation gap
필요한 돈과 오는 돈 사이
UNEP의 ‘적응 격차 보고서 2025’는 부제부터 경고다 — ‘Running on Empty(빈 탱크로 달리다)’. 개발도상국이 2035년까지 적응에 필요한 돈은 연 3,100억~3,650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2023년 실제로 흘러간 국제 공공 적응 재원은 약 260억 달러였다. 그 전해(약 280억 달러)보다 오히려 줄었다.
개도국 적응 재원 — 연간, 미 달러
국제 공공 적응 재원 흐름 (2023)
$26bn
UNEP, 2025
글래스고 ‘2배’ 목표 (2025)
≈ $40bn
COP26 합의, Carbon Brief 추산
COP30 ‘3배’ 목표 (2035, 분석가 해석)
≈ $120bn
Carbon Brief, 2025
개도국 적응 재원 수요 (2035, 모델 추정)
$310bn
UNEP, 2025
개도국 적응 재원 수요 (2035, NDC·NAP 기반)
$365bn
UNEP, 2025
COP30 결정문은 ‘2035년까지 적응 재원 최소 3배’를 명시했지만 기준연도와 금액은 적지 않았다. 약 1,200억 달러는 COP26의 ‘2배’ 목표(약 400억 달러)를 기준으로 한 분석가들의 해석이다. 수요 추정치는 방법론에 따라 다르며, 흐름과 수요는 집계 범위가 달라 단순 비교에 주의가 필요하다.
막대를 보면 격차의 성격이 보인다. 지금 흐르는 돈은 수요의 12분의 1에서 14분의 1이고, COP30의 ‘3배’ 목표를 달성해도 수요의 3분의 1을 넘지 못한다(Carbon Brief, 2025). 보고서는 민간 부문이 정책 지원과 혼합금융을 전제로 연 500억 달러 안팎을 보탤 수 있다고 봤지만, 그래도 빈 곳은 크다.
여기서 AI의 역할은 두 갈래다. 하나는 같은 돈을 더 정확한 곳에 쓰게 하는 것이다. 열지도와 위험 모델은 한정된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쓰인다. 다른 하나는 적응 사업을 ‘측정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벨렝 지표 59개가 생겼어도, 데이터가 없으면 진척을 보고할 수 없다. 재원이 성과를 요구하는 한, 측정 능력은 곧 재원 접근성이다. 기후 재원 전반의 흐름은 이 시리즈의 기후 재원 편에서 이어서 다룬다.
05 · Limits
적응은 무한하지 않다. 기술도 그렇다.
01
적응에는 한계가 있다
IPCC 6차 보고서는 일부 인간 시스템에서 적응의 ‘연성 한계’(재정·제도·정책의 제약)에 이미 도달했고, 일부 생태계는 더 이상 적응할 수 없는 ‘경성 한계’에 닿았다고 평가했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한계에 닿는 시스템은 늘어난다. 그 너머는 적응이 아니라 ‘손실과 피해’의 영역이다.
02
손실과 피해 기금은 아직 작다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FRLD)은 2025~2026년 첫 시범 창구에 2억 5천만 달러를 배정했다. 적응 재원 수요가 연 수천억 달러 단위라는 점과 비교하면 상징에 가깝다.
03
데이터가 가장 없는 곳이 가장 취약하다
IPCC는 33억~36억 명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환경에 산다고 추정한다. 이들의 상당수가 관측소·보험·디지털 기록이 가장 부족한 지역에 있다. 과거 데이터로 배우는 AI는 데이터가 쌓인 곳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
04
기술이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
좋은 열지도와 정밀한 위험 모델은 먼저 그것을 살 수 있는 도시·기업·부유층에게 간다. 잘못 설계된 적응은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부적응(maladaptation)’이 된다. 한 동네의 제방이 옆 동네의 홍수를 키우듯이.
적응의 AI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실패는 틀린 예측이 아니다. 정확한 예측이 이미 가진 사람에게만 닿는 것이다.
06 · Design principles
좋은 적응 AI의 다섯 가지 조건
지자체든 기업이든 연구기관이든, 적응을 위한 AI를 만들거나 도입한다면 모델의 정확도 이전에 아래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01
예측보다 행동에서 역산한다
‘무엇을 예측할까’가 아니라 ‘누가 언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시작한다. 파종을 미룰 수 있는 시점, 대피에 필요한 시간이 모델의 목표 변수가 된다.
02
가장 약한 고리까지 닿는지 확인한다
경보가 스마트폰 앱에서 끝나면 휴대전화가 없는 노인에게는 없는 경보다. 전달 경로의 마지막 1킬로미터를 성과 지표로 삼는다.
03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는다
‘70% 확률로 우기 시작’과 ‘우기 시작’은 다른 정보다. 확률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는 설계가 정확도만큼 중요하다.
04
데이터 주권과 현지 역량을 남긴다
외부 플랫폼이 떠나면 멈추는 시스템은 적응이 아니라 의존이다. 각국 기상청과 지역 기관이 모델을 검증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05
정밀함을 배제가 아닌 보호에 쓴다
더 정확한 위험 지도는 더 많은 사람을 보장하는 설계(공공 재보험, 지수형 보험, 사전 대응 재원)와 짝을 이룰 때에만 정의롭다.
참고 자료
- WMO — 2024 warmest year on record, ~1.55°C (2025)
- Lancet Countdown on health and climate change — 2025 report
- UNEP Adaptation Gap Report 2025 — Running on Empty
- Carbon Brief — Five charts on the adaptation finance gap (2025)
- Carbon Brief — COP30’s ‘tripling adaptation finance’ target (2025)
- UNFCCC — Global goal on adaptation / UAE Framework (2/CMA.5)
- UN — Early Warnings for All
- WMO/UNDRR — Global Status of Multi-Hazard Early Warning Systems 2025
- Climate Home News — third of countries still lack early warning systems (2026)
- 기상청 — 18년 만에 폭염특보 개편 (2026)
- 기상청 날씨누리 — 영향예보
- Google Research — Flood forecasting
- Google — Heat Resilience data for 50+ global cities
- University of Chicago — AI monsoon forecasts for 38 million farmers (2025)
- Earth Fire Alliance — About FireSat
- Swiss Re Institute — sigma 1/2026, natural catastrophes in 2025
- IPCC AR6 WGII — Summary for Policymakers (2022)
- FRLD — Barbados Implementation Modalities
이 글의 수치는 2026년 9월 기준으로 확인한 공개 자료에 근거한다. 기업이 발표한 커버리지·성능 수치는 해당 기업의 자체 발표이며 독립 검증 수준은 사례마다 다르다. ‘AI 기여도’ 표시는 필자의 판단이다.
줄이는 싸움은 계속된다.
견디는 준비는 지금이다.
적응은 감축의 포기가 아니다. 온도를 0.1°C라도 덜 올리면 적응해야 할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 동시에 이미 도착한 더위와 물 앞에서 사람을 지키는 일은 미룰 수 없다. AI는 그 일을 더 잘게, 더 일찍 볼 수 있게 해준다. 다만 그 눈이 가장 먼저 향해야 할 곳은 가장 데이터가 적고, 가장 목소리가 작은 곳이다. 협정 10년, 적응의 성적표는 거기서 매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