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
생계로서의 어업이 사라진 자리에서, 벨기에 오스트뒨케르커의 마상 새우잡이는 '공연되는 기술'이 되어 살아남았다 — 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열다섯 명, 그리고 축제와 박물관이라는 삼각 구조.
유산 관점 · 글 고승원
생계는 끝났다. 유산은 살아남았다.
노란 방수복을 입은 어부가 브라반트 역용마에 올라 북해로 걸어 들어간다. 말이 가슴까지 잠긴다. 500년 된 기술이다. 한때 프랑스 북부에서 플랑드르를 지나 잉글랜드 남부까지, 북해 연안 전역에 마상 새우잡이꾼들이 있었다. 지금은 지구에서 오직 여기, 벨기에 서플랑드르주 오스트뒨케르커에서만 남았다. 열다섯 명 남짓.
2013년 유네스코는 '오스트뒨케르커의 말을 이용한 새우잡이(Shrimp fishing on horseback in Oostduinkerke)'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렸다(UNESCO ICH 요소번호 00673). 제주 해녀와 마찬가지로 UNESCO 등재 유산이다.
그런데 이 두 유산의 보전 전략은 정반대다. 제주 해녀는 실질 어업 소득을 유지하며 수천 명이 활동하는 공동체 중심의 길을 걷는다. 오스트뒨케르커의 파르덴비서스(paardenvissers, '말 어부')는 생계로서의 어업이 사라진 자리에서 '공연되는 기술'로 스스로를 재정의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이 글의 질문이다.
숫자로 보는 현실
2013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연도
UNESCO ICH 00673, 8.COM
500+
년 — 이 전통이 이어진 세월
NAVIGO 국립어업박물관
15~17명
현존 어부 — 12가구, 지구에서 오직 여기뿐
NAVIGO / UNESCO 등재 기록, 2023
1950
새우 축제(Garnaalfeesten) 창설 — 등재 63년 전
Koksijde 시 공식 기록
1만+
연간 축제 방문객 수
Garnaalfeesten 축제 통계
Trajectory
40명에서 7명, 그리고 다시 17명
20세기 중반 필요가 사라지며 7명까지 급감한 파르덴비서스는 이후 다시 17명 수준으로 안정됐다. 소멸 직전에서 반등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 그 전환의 핵심이 이 글의 논지다.
출처: NAVIGO 국립어업박물관 / UNESCO ICH 등재 기록 · 1940년 수치는 추정
01 · The Craft
간조 전후 세 시간, 가슴까지 잠긴 채
파르덴비서스는 간조 1시간 30분 전부터 간조 후 1시간 30분까지, 약 세 시간 동안 바다에 나간다. 브라반트 역용마(벨기에 중종마)를 타고 북해의 얕은 바다로 들어가 해안선과 평행하게 걷는다. 말이 가슴 높이까지 잠긴다.
그물은 7×10미터짜리 깔때기 형태다. 양옆의 나무판이 입구를 벌리고, 바닥에 끌리는 쇠사슬의 진동에 놀란 회색새우(Crangon crangon)가 튀어 올라 그물 속으로 들어간다. 30분마다 해변으로 돌아와 그물을 비우고 체질해 말 양쪽 바구니에 나눠 담는다.
복장은 노란 유포 방수복, 긴 장화, 사우웨스터 — 챙이 넓은 방수모다. 그러나 이 기술이 요구하는 진짜 자질은 복장 너머에 있다. 모래톱과 조류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리고 자기 말에 대한 신뢰와 존중.
이 기술은 사람이 혼자 익히는 것이 아니다. 말과 사람이 함께 익히는 것이다. 그것이 500년의 기술을 기계가 대체하지 못한 이유다.
02 · The Last of Their Kind
북해 연안 전역에 있었던 것이 왜 여기만 남았나
마상 새우잡이는 원래 가난한 어부와 농민의 생계형 부업이었다. 프랑스 북부 해안에서 시작해 플랑드르, 네덜란드, 독일, 잉글랜드 남부까지 북해 연안 전역에 퍼져 있었다. 별도의 배 없이 말 한 마리면 되는, 진입 장벽이 낮은 어업이었다.
20세기 중반, 그 필요가 사라졌다. 트럭과 냉장 유통, 저렴한 트롤선이 마상 어업을 경제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북해 연안의 마상 새우잡이는 급격히 소멸했다 — 오스트뒨케르커 한 곳을 제외하고.
오스트뒨케르커는 콕세이더시의 해안 마을이다. 관광 인프라가 일찌감치 자리 잡은 곳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 기술이 다른 곳에 없다는 것을 — 즉 희소성이 생겼다는 것을 — 인식했다. 급감의 끝자락에서 지역 공동체와 행정이 움직였다. 그 첫 번째 행동이 축제였다.
03 · Festival Before Inscription
1950년이 먼저였다 — 등재보다 63년 앞서
새우 축제(Garnaalfeesten)는 1950년에 창설됐다. 유네스코 등재가 2013년이니 63년 먼저다. 이것이 이 유산의 보전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마을은 이 기술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유네스코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스스로 축제를 만들었다.
축제는 매년 6월 마지막 주말 이틀간 열린다. 새우 퍼레이드, 수백 명의 아이들이 참가하는 새우잡이 대회, 그리고 파르덴비서스의 시연. 매년 1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 축제는 이 기술을 마을의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어업이 아니라 마을이 자랑하는 것으로.
축제가 생기고 나서 두 번째 구조가 들어왔다. NAVIGO 국립어업박물관이 보전의 제도적 중심을 맡았다. 어부들의 기술 전수, 전시, 기록이 박물관을 통해 이뤄졌다. 축제·시연·박물관이라는 삼각 구조가 완성됐다. 이 삼각 구조 안에서 15명이 유산을 지켜냈다.
그들은 어업을 지키는 대신, 어업을 정직하게 다른 것 — 공연되는 기술 — 으로 바꾸기로 했다.
04 · The Museum at the Center
NAVIGO — 박물관이 유산의 제도적 중심을 맡다
NAVIGO 국립어업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다. 유네스코 등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보전 계획의 실질적 담당자다. 지역 공동체, 지역 정치인, 관광 부서, 플랑드르 무형유산기구, 유산전문센터 FARO, 문화부가 NAVIGO를 중심으로 협력한다. 개별 어부 12가구가 각각 그물 짜기, 역용마 관리 등 전문 영역을 보유하며 이 체계 안에 참여한다.
2024년 9월, NAVIGO는 대대적인 리뉴얼 재개관을 했다. 개관의 핵심은 사진가 스테판 반플레테런(Stephan Vanfleteren)의 특별전이었다 — 현재 활동 중인 어부 15인의 초상을 담은 연작. 보전이 '숫자 유지'가 아니라 '사람 기록'임을 보여주는 방향이다.
UNESCO 보전 평가에서 이 사례는 해변과 바다 사이의 관계라는 점에서 지속가능발전의 흥미로운 사례로 언급된다. 2026년 부활절에도 파르덴비서스는 시즌을 열었다. 연 약 40회 바다에 나가며, 여름에는 거의 매일 시연이 가능하다. 개인 예약 세션도 운영된다.
05 · 정반대의 보전 전략
해녀와 파르덴비서스 — 같은 유산, 정반대의 길
두 유산 모두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그런데 보전 전략은 정반대다. 가장 큰 차이는 '관광 시연으로의 전환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느냐'다. 15명 규모로 생계형 어업을 지키려 했다면 오스트뒨케르커의 마상 새우잡이는 진작 소멸했을 것이다 — 대신 그들은 '공연되는 기술'로 재정의했다.
진정성 훼손이냐, 유일한 생존로냐 — 이것은 무형유산 보전의 고전적 쟁점이다. 오스트뒨케르커는 한 방향의 답을 냈다. 그 답이 옳은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유산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항목
파르덴비서스
제주 해녀
전승자 규모
15~17명 · 12가구
수천 명 규모
생계 기반
생계 기반 사실상 소멸 — 시연·관광이 지속 동력
실질 어업 소득 여전히 존재
보전 주체
박물관(NAVIGO) 중심
어촌계·학교 등 공동체 조직
관광 통합
시연 일정을 공식 캘린더로 상품화
상대적으로 느슨한 통합
위기 대응 시점
1950년대 축제 창설 — 등재 전 선제 대응
등재 후 제도화 가속
제주 해녀가 택한 길과 정확히 반대다. 어느 쪽이 더 나은 보전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파르덴비서스의 사례는 제주해녀 보전 정책을 설계할 때 ‘반대 극단의 참고 사례’로 반드시 들여다봐야 할 모델이다.
열다섯 명이 지켜냈다.
정직하게 다른 것이 되기로 했을 때.
생계가 끝난 자리에서도 유산은 살아남을 수 있다 — 단, 정직하게 다른 것이 되기로 할 때. 2026년 부활절에도 그들은 말을 타고 바다로 들어갔다. 오스트뒨케르커의 북해 위에서, 500년 된 기술이 오늘도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