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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 AI — 파리협정 10년 시리즈 4/7

전 지구적 이행점검
인류의 성적표를
AI가 쓴다면

파리협정은 5년마다 모두의 진전을 함께 점검한다. 첫 점검에 쌓인 입력만 17만 쪽이 넘었다. 2028년 두 번째 성적표를 앞두고 AI는 그 읽기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채점과 서명까지 넘길 수는 없다.

기후 거버넌스와 기술 · 글 고승원

약속은 각자 했다. 채점은 함께 한다.

파리협정의 설계는 독특하다. 교토의정서처럼 위에서 감축량을 나눠주지 않는다. 각국이 스스로 목표를 정해 낸다. 그래서 늘 같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제각각 낸 약속을 합치면 충분한가.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장치가 제14조의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 GST)이다. 개별 국가를 심판하지 않는다. 인류 전체가 목표를 향해 얼마나 왔는지를 형평성과 최선의 가용 과학에 비추어 함께 따진다. 말하자면 5년마다 받아 드는 인류의 성적표다.

첫 번째 성적표는 2023년 두바이에서 나왔다. 그걸 쓰기 위해 사람들이 읽어야 했던 분량은 상상을 넘는다. 이 글은 그 성적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AI가 그 과정의 어디를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는 절대 손대선 안 되는지를 따라간다.

숫자로 보는 현실

17만+ 쪽

첫 번째 이행점검 기술 대화에 제출된 문서 분량 — 회의만 252시간 이상

UNFCCC, 2023

17개

그 방대한 입력을 압축한 기술 대화 종합보고서의 핵심 발견(key findings)

UNFCCC 종합보고서, 2023.9

−60%

1.5°C 경로에 필요한 2035년 온실가스 감축폭(2019년 대비) — 2030년엔 −43%

결정문 1/CMA.5 제27항, 2023

−12%

2025년 새 NDC(113개 당사국) 이행 시 2035년 예상 감축폭(2019년 대비)

UNFCCC NDC 종합보고서 업데이트, 2025.11

UNFCCC 공식 문서·보도자료 기준. NDC 종합보고서 수치는 제출 시점과 포함 당사국 수에 따라 갱신되며, 조사·연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01 · What the stocktake is

심판이 아니라 톱니바퀴

제14조는 이행점검을 이렇게 규정한다. 협정의 목적과 장기 목표를 향한 집단적 진전을 평가하되, 감축·적응·이행수단과 지원을 모두 고려하고, 형평성과 최선의 가용 과학에 비추어 포괄적이고 촉진적인 방식으로 한다.

과정은 세 단계다. 첫째, 정보 수집과 준비. 둘째, 기술적 평가 — 전문가와 당사국이 입력을 놓고 대화한다. 셋째, 산출물 검토 — 정치적 메시지와 결정문을 만든다. 앞의 두 단계는 ‘읽기’, 마지막 단계는 ‘합의’다.

그리고 결과는 다음 NDC로 흘러간다. 점검(2023) → 새 NDC(2025) → 점검(2028) → 새 NDC(2030 예상). 이 5년 주기를 흔히 ‘야심 상향 메커니즘(ratchet)’이라고 부른다. 점검은 누구를 처벌하지 않는다. 다음 약속의 기준선을 올릴 뿐이다.

이행점검의 힘은 강제에서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성적표를 본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02 · The five-year cycle

2015에서 2028까지, 한 바퀴 반

각 시점을 눌러 보자. 첫 점검은 끝났고, 그 결과로 새 NDC가 나왔고, 두 번째 점검은 올해 11월 안탈리아에서 시작된다.

2023.12

두바이 COP28 — 결정문 1/CMA.5 채택

196개 항의 결정문. 에너지 체계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ing away from fossil fuels)’,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3배·에너지 효율 개선 속도 2배가 처음으로 전 지구적 노력으로 적혔다.

점선 원은 예정된 일정. 2030년 NDC 제출·2040년 목표 연도는 5년 주기에 따른 예상이며 확정 일정이 아니다. 출처: 파리협정 제14조, 결정문 1/CMA.5(2023), UNFCCC GST2 안내(2026 확인).

03 · What Dubai wrote down

첫 성적표에 적힌 문장들

2023년 12월 COP28에서 채택된 결정문 1/CMA.5의 첫머리는 이렇다. 감축·적응·이행수단 전반에 진전이 있었지만, 당사국들은 아직 집단적으로 궤도 위에 있지 않다. 1.5°C 제한을 위해서는 2019년 대비 2030년까지 43%, 2035년까지 60% 감축과 2050년 CO₂ 넷제로가 필요하다(제27항).

그리고 제28항에서 당사국들이 ‘국가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기여할 전 지구적 노력을 열거했다. 기후 협상사에서 화석연료를 에너지 전환의 대상으로 이렇게 명시한 것은 처음이었다.

¶28(a)

재생에너지 3배 · 효율 2배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3배, 에너지 효율 개선의 연평균 속도 2배.

¶28(b)

저감장치 없는 석탄발전 단계적 감축

‘폐지(phase-out)’가 아니라 ‘감축(phase-down)’. 단어 하나를 두고 수년간 협상이 이어져 온 영역이다.

¶28(d)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에너지 체계에서, 정의롭고 질서 있고 공평한 방식으로, 이 결정적 10년에 행동을 가속해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하도록.

¶18 · ¶21

냉정한 진단

협정 이전 일부 전망의 4°C에서 최신 NDC 완전 이행 시 2.1–2.8°C로 내려왔지만, 당시 NDC로는 2030년 배출이 2019년보다 평균 2%밖에 줄지 않는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출처: UNFCCC, Decision 1/CMA.5 ‘Outcome of the first global stocktake’(2023). 제28항은 ‘촉구(calls on)’ 형식이며 국가별 의무 할당이 아니다.

04 · The reading problem

17만 쪽을 누가 다 읽었을까

첫 점검의 기술 대화에는 17만 쪽이 넘는 서면 제출물이 들어왔고, 252시간 넘는 회의가 열렸다. 기술 대화의 공동 촉진자들과 사무국이 이를 17개 핵심 발견으로 압축했다. 놀라운 작업이다. 동시에 구조적 한계가 분명한 작업이다.

한 사람이 하루 200쪽을 쉬지 않고 읽는다고 해도 850일이 걸린다(단순 계산 예시). 실제로는 분업하고, 요약본을 읽고, 익숙한 언어와 익숙한 기관의 문서에 먼저 손이 간다. 사람의 종합에도 이미 선택과 누락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첫 점검 때 이미 기계가 들어왔다. 한 비영리 연구 조직은 1,600건이 넘는 입력 문서를 전문 검색하고, 모든 언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기계학습 분류기로 부문·정책수단을 태깅한 공개 탐색 도구를 내놓았다. 학계에서는 25만 개가 넘는 문단을 다국어 토픽 모델로 분석한 연구도 나왔다.

질문은 ‘AI를 쓸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쓰고 있다. 질문은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다.

05 · Where AI helps

읽기, 재기, 비교하기, 거들기

AI가 이행점검에 보탤 수 있는 역할은 크게 네 가지다. 각각에는 반드시 따라붙어야 할 경고문이 있다.

01

문헌·정책 종합

수천 건의 제출물을 언어와 관계없이 검색하고, 문단 단위로 주제·부문·정책수단을 분류하고, 근거 페이지로 곧장 연결한다. 이미 첫 점검 때 1,600건 이상, 17만 쪽이 넘는 문서를 번역·색인한 공개 탐색 도구가 등장했다(Climate Policy Radar, 2023).

주의 — 기계 번역과 분류기는 ‘거의 맞는’ 결과를 낸다. 협상 문구에서 ‘거의’는 전부일 수 있다.

02

격차 분석

각국 NDC의 목표·부문·조건부 요소를 구조화해, 1.5°C 경로에 필요한 감축량과의 차이를 부문별·국가별로 계산한다. 사람이 몇 달 걸리던 비교표를 며칠로 줄일 수 있다.

주의 — 격차의 ‘크기’는 계산할 수 있어도, 그 격차를 ‘누가’ 메워야 하는지는 계산의 영역이 아니다.

03

진전 추적 대시보드

재생에너지 설비, 효율 개선 속도, 석탄발전, 재원 흐름 같은 두바이 지표를 5년에 한 번이 아니라 연 단위로 추적한다. 위성·전력·무역 데이터를 결합하면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신호를 읽을 수 있다.

주의 — 측정 가능한 것만 대시보드에 오른다. 적응·손실과 피해처럼 숫자로 잘 잡히지 않는 영역이 조용히 밀려난다.

04

NDC 설계 지원

데이터와 분석 인력이 부족한 국가가 점검 결과를 자국 정책에 번역하도록 돕는다. 유사국 사례 검색, 부문별 시나리오 초안, 보고 양식 점검 같은 반복 작업을 덜어준다.

주의 — 같은 모델이 같은 초안을 여러 나라에 내놓는다면, ‘국가가 결정하는’ 기여는 점점 닮아간다.

격차 분석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한 장면만 보자. 두바이가 적은 ‘필요한 감축’과 2025년 새 NDC가 약속한 감축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각국 NDC를 추적하는 AI의 역할은 NDC 워치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1.5°C 경로에 필요한 감축(2035, 2019년 대비)

−60%

Decision 1/CMA.5 ¶27, 2023

2025년 새 NDC 이행 시 예상 감축(113개국)

−12%

UNFCCC NDC synthesis update, 2025.11

두 숫자는 산출 방법과 범위가 다르다(IPCC 모델 경로 대 제출된 NDC 합산). 정확한 차감이 아니라 격차의 규모를 보여주는 비교로 읽어야 한다. UNEP 배출격차보고서 2025도 NDC 완전 이행 시 금세기 2.3–2.5°C 온난화를 전망했다.

06 · Division of labour

AI가 도울 수 있는 일 vs 사람이 해야 하는 일

경계선은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정당성에서 그어진다. 계산이 끝나는 곳에서 판단이 시작되고, 판단에는 책임질 주체가 있어야 한다.

단계AI가 도울 수 있는 일사람이 해야 하는 일
입력 읽기17만 쪽 검색·번역·색인, 근거 문단 연결무엇이 ‘최선의 가용 과학’인지 판단, 누락된 목소리 찾기
진전 측정지표 추적, 이상치 탐지, 연 단위 업데이트어떤 지표가 ‘진전’인지 정의하고 합의하기
격차 계산1.5°C 경로 대비 부문·국가별 차이 산출형평성·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에 따른 분담 판단
요약·종합초안 작성, 주제별 군집, 출처 표기무엇을 헤드라인으로 올릴지, 무엇을 소수의견으로 남길지 결정
결정문문구 대안 비교, 이전 결정문과의 일관성 점검협상·타협·서명 —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국내 이행시나리오 초안, 유사국 사례, 보고 양식 점검산업·노동·지역의 이해관계 조정, 정치적 결단

CBDR-RC: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과 각자의 역량(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and Respective Capabilities). 표는 필자의 정리다.

07 · The limits

요약은 중립적이지 않다.
형평성은 요약되지 않는다.

이행점검의 결론은 기술 보고서가 아니라 정치적 합의다. ‘누가 먼저, 얼마나, 누구의 돈으로’라는 질문에는 정답 데이터가 없다. 역사적 배출 책임, 발전의 권리, 취약성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것은 각국 대표가 협상장에서 하는 일이고, 그 결과를 자국민에게 설명할 책임도 그들에게 있다. AI 요약이 이 과정을 대신하는 순간, 합의는 ‘모델이 그렇게 말했다’로 바뀐다.

01

누락

요약은 본질적으로 버리는 일이다. 무엇을 버렸는지 표시하지 않는 요약은, 작은 섬나라나 원주민 공동체의 한 문단을 흔적 없이 지운다.

02

편향

첫 점검 제출물을 기계학습으로 분석한 연구는 북반구 제출물이 미래지향적 감축을, 남반구 제출물이 영향과 취약성을 강조했다고 보고했다(Sietsma 외, Climatic Change, 2023). ‘평균 요약’은 이 차이를 평평하게 만든다.

03

환각

기후 정책 문서에 생성형 AI를 쓰는 연구자들 스스로가 첫 번째 과제로 ‘정보를 지어내거나 잘못 전달하는 경향’을 꼽는다(Juhasz 외, arXiv, 2024). 존재하지 않는 조항 하나가 협상장에 들어가면 신뢰 전체가 흔들린다.

04

책임성

성적표에 서명하는 것은 모델이 아니라 당사국이다. 누가 어떤 모델로 어떤 입력을 어떻게 요약했는지 공개되지 않으면, 결과를 문제 삼을 방법도 사라진다.

08 · Before 2028

두 번째 성적표를 위한 다섯 가지 규칙

두 번째 점검의 정보 수집은 약 6주 뒤 시작된다. 이번에는 생성형 AI가 훨씬 깊숙이 들어올 것이다. 사무국이든, 당사국 대표단이든, 시민사회든, AI로 입력을 읽고 요약한다면 최소한 이 다섯 가지는 지켜야 한다.

모든 요약 문장에 근거 문단 링크를 단다. 출처 없는 문장은 초안에서 빠진다.

요약과 함께 ‘버린 것 목록’을 낸다. 어떤 당사국·그룹의 주장이 헤드라인에서 빠졌는지 보이게 한다.

유엔 공식 6개 언어와 그 밖의 언어 제출물을 같은 품질로 처리했는지 언어별로 점검한다.

사용한 모델·버전·프롬프트·입력 목록을 공개하고, 재현 가능한 형태로 남긴다.

최종 문안은 사람이 쓰고 사람이 서명한다. AI는 초안과 점검까지만.

이 규칙은 AI를 막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작은 나라의 한 문단까지 읽히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기계의 인내심일 수 있다. 다만 그 인내심이 누구의 목소리를 키우고 누구의 목소리를 줄이는지 보이게 해야 한다. 1.5°C라는 목표가 무엇을 측정하는지는 시리즈 1편에서, AI 자체의 에너지 발자국이 협정과 부딪히는 지점은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다룬다.

Read everything. Decide together.

AI는 성적표를 읽는다.
서명은 사람이 한다.

첫 번째 성적표는 ‘궤도에 있지 않다’고 적었다. 두 번째 성적표가 무엇이라고 적을지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AI는 그 성적표를 더 빨리, 더 넓게, 더 많은 언어로 읽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숫자를 받아들이고 누구에게 얼마를 요구할지는 끝내 사람의 몫이다. 기계가 잘 읽을수록, 사람은 더 잘 판단해야 한다.